산에게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봄에는 연한 새잎이 돋아 수줍은 초록이다. 어떤 산은 꽃이 만개해 화(花)산이 되기도 한다.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내리는 비의 에너지를 먹고 쌩쌩한 초록이 된다.

서늘한 가을이 드리우면 활활 타는 불꽃처럼 빨강과 노랑 옷을 입고,

겨울에는 침엽수를 빼고는 옷을 죄다 벗어 어두운 녹 빛, 또는 갈색빛을 띤다.

너무 추운 날에는 헐벗은 산을 덮는 흰 눈이 내려,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이 뿐일까? 산은 생기와 활력이 넘치지만, 때로는 낮인데도 스산하다.

새까만 어둠이 드리워진 야산, 정체를 구별할 수 없는 기척과 소리들은 엄청난 공포를 안긴다.

등산이 주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모습을 즐기는 것이 그중 하나다.

산의 다양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때때로 무섭고 위험하기도 한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울주산악영화제는 매 해 4월에 개최돼요. (지금은 11월...) 날 따뜻하고 꽃 활짝 핀 봄날이 등산하기에도, 영화 보기에도 딱 좋잖아요! 🌸 그렇지만 벌써 내년을 기약하긴 일러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마다 산악 영화들을 움프 극장¹⁾에서 상영해주거든요. 11월에는 사람과 지구의 죽음을 가만히 꿰어보는 다큐멘터리 <슬픔과 극복의 태피스트리>가 상영되고, 12월에는 네팔, 노르웨이, 미국에서 온 산악 영화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 봄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약간 서둘러 울주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버젓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와 산을 연결짓는 건 어쩐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걸 관통하는 건 삶이라는 점, 산이 배경인 영화와 산에서만 봐야 하는 영화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산과 영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죠? 😜

등산에 입문한 분들 중 🔗100대 명산 인증 패치를 받으시느라 주말마다 바쁘신 분들 꽤 계실 것 같은데요, 📍 산을 정복했다!라는 뜻의 '피크 헌팅(peak hunting)'을 추구하는 등정주의는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최대 목표로 해요. 가장 쉬운 코스를 통해서, 혹은 온갖 장비를 이용해서라도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과거의 전통적인 등반 사조입니다.

많은 산들이 정복되기 이전에는 정상에 오르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주목을 받았어요. 이슈는 돈이 되고, 이럴 때에는 여지없이 기업이 개입합니다. 💰 한국 산악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여성 14좌 완등 경쟁도 마찬가지였어요. 여성 산악인 고미영과 오은선은 세계 최초 여성 14좌 등반자 자리를 두고 대결구도에 휘말렸습니다. 이는 곧 등산 산업의 거대 자본 코오롱(고미영의 스폰서)과 블랙야크(오은선의 스폰서)의 경쟁이었어요. 14좌를 누가 먼저 정복하느냐가 곧 기업의 막대한 영예와 경제적 이익을 좌우했기에, 무리한 등정 일정을 비롯하여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됐습니다. 그리고 산악인 고미영씨는 히말라야 산맥의 낭가파르마트를 등정하는 중,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어요. 슬프게도, 자신의 한계를 차마 다 극복하지도 못한 채 눈을 감은 산악인은 고미영 씨 외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자본이 개입된 상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들의 죽음을 과연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혹은 자본주의의 비극으로 봐야 할지에는 다시 바라볼 여지가 있어요. 여성 산악인의 숭고한 도전이 기업의 탐욕에 의해 좌절된 건 아닐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