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매일이 경기는 아닐 테지만, 분명 삶 어떤 순간에는 경기장에 들어서는 운동선수와 같은 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 훈련하듯 일과를 통제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시험장에 들어가면서요. 그곳에서, 혹은 그곳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린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엔 여러 생각이 들죠. 누군가를 이기고 그 위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 요행을 바라는 마음, 혹은 편법을 써서라도 내가 욕망하는 바를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요.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

- 김연아 선수 -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이후, 운동선수들의 도핑의혹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논란을 지켜보던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인 브라이언 포겔은 자신의 영웅인 🔗랜스 암스트롱의 도핑사건을 보고 의문을 품게 돼요. 🚴 500번이 넘는 약물 검사에서 걸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 시스템에는 결함이 있다고요. 네, 선수들의 도핑을 테스트하는 시스템엔 결함이 있었습니다. 이를 밝혀낸 다큐멘터리 🔗<이카로스>는 “도핑을 해도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해 국가적 음모의 내부고발까지 이어졌는데요, 덕분에 러시아 선수들은 지난 2015년 국가 주도 도핑 사건이 밝혀진 이후 자국 이름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언뜻 생각해 보자면 경기장에서의 경쟁은 그 밖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경쟁보다는 공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경기장의 숭고한 원칙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규칙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속에도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은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스포츠 또한 ‘픽션’인 거겠죠. 스포츠가 만드는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때아닌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걸 분명 알지만 아무도 모를 수 있다면, 혹은 처벌받을 만큼의 잘못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보며 선수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구사할 논리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을 거예요.

‘공정’이라는 가치야 말로 스포츠라는 이야기의 서사를 가장 풍부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고, 경기장의 펜스 안에서 각자의 최선을 우린 목격하니까요. 픽션 속에서도 공정은 불가능한 가치라면, 우린 어디에서 공정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님은 몇 등이 되고 싶으신가요? 1등이 아닌 다른 등수를 얘기하긴 어렵겠죠. 연극 <새빨간 스피도>의 주인공, 수영선수 ‘레이’ 역시 1등이라고 말합니다. 🏊 실제로 레이는 마이클 펠프스를 두 번이나 이겼고, 1등이 자신의 자리이고 소유라고 굳게 믿어왔죠. 또다시 1등이 되고자 출전하는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하루 전, 레이의 ‘1등’ 인생에 빨간 불이 켜집니다. 🚨 약물 문제가 불거졌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레이는 감독과 형 ‘피터’, 그리고 전 여자친구 ‘리디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1등을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레이의 심정은 절박합니다. 이런 상황은 무한경쟁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닥 낯설지 않은데요. 대학 입학 시험을 치며 전국의 수험생들과 ‘등급’이나 ‘합격’을 두고 다툰 뒤, 성인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쫓겨났고, 그 곳에서조차 ‘수석’이 되고자 미친듯이 달려야 하잖아요. 만에 하나… 학교를 자퇴하거나 보통의 사무직을 택하지 않는대도, 경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의 시선과 겨뤄야 합니다. 👁

이때 연극 <새빨간 스피도>는 달콤한 질문을 건넵니다. “찰나가 중요한 경쟁에서, 절대 들키지 않으며 1등을 보장하는 반칙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 아마도 타인이 있는 곳에서라면 “아니요.”라고 답하며 양심을 지키시겠지만, 이 글을 홀로 읽는 지금은 다른 대답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살아오는 내내, 우리는 경쟁의 우위를 반드시 점해야 한다고 배웠음에도, 그 우위를 마침내 차지할 (불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면 왜 망설이게 되는 걸까요? 경쟁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인 것처럼 배웠는데, 결국 막다른 길에서의 우리를 붙드는 것은 양심이나 선의인 걸까요?

연극 <새빨간 스피도>는 우리의 일부이자, 치부인 ‘경쟁’을 수영장 위로, 무대 위로 꺼내놓습니다. 덩그러니 놓인 '경쟁'은 레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물론, 우리 관객까지 치열한 고민에 빠지게 해요. 😖 여러분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요? 누가 더 좋은 선택을 한지는 겨루지 말도록 합시다.

먼저 공연을 관람하고 온 다다팀이 드리는 관람 포인트 ✅

지난 7월, 다다팀이 연극 〈새빨간 스피도〉 연습을 참관하고 왔어요. 공연을 관람할 다다단에게 미리 알아두면 좋을 포인트를 공유합니다.

지난 7월 말, 다다팀은 마로니에 공원에 모였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 연습실에서 진행된 연극 〈새빨간 스피도〉의 연습을 참관하기 위해서요! 연습 후에는 참관한 이들 한 명 한 명의 소감을 묻고 질의응답을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어요. 그 후 다다팀은 이영석 연출님, 임승태 드라마터그님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를 다다단께 들려드려요. 🙌

엥믜 🙊  안녕하세요! 다다레터를 만들고 있는 엥믜, 영, 지정입니다.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요!

이영석 💡 저는 연출하는 이영석이고요. 연출을 해온 지는 15년 정도 됐어요. 저희 극단 이름은 신작로인데, 신작을 왕성하게 내는 극단이 아니에요. (일동 웃음)

임승태 ⚙️ 저는 이번 작업에서 드라마터그랑 텍스트 번역을 맡은 임승태라고 해요. 극단 신작로에서 이영석 연출님과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엥믜 🙊  그러면 첫 질문부터 먼저 드릴게요. 〈새빨간 스피도〉가 루카스 네이스의 작품인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또 어떤 과정으로 이 작품을 번역하고 공연까지 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해요.

임승태 ⚙️ 스포츠계라는 다소 친숙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국내 관객 층과 맞닿을 수 있는 젊은이의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한국 사회에서 공정에 대한 관심도 많았었고, 스포츠계에서도 약물 도핑과 관련된 이슈가 상당히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겹쳐지면서 이 이야기가 공연이 돼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출연 배우가 4명이기 때문에 극단에서 소화할 수 있는 규모라는 판단도 했었고요. 그렇게 연출님께 제안을 드린 이후 번역 작업을 먼저 하고 시간이 한참 지났어요. 중간에 코로나도 있었고, 제작비가 없어서 제작을 못하기도 했거든요. 2021년에 낭독 공연 이후 2023년에 본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엥믜 🙊  내가 만약에 피터라면, 자신의 동생이 약물 투여한 사실을 고백을 했을 때 연출님과 드라마터그님은 어떻게 하실 것 같은지가 너무 궁금했어요.

이영석 💡 이게 솔직히 얘기하면 안 걸린다는 말이 엄청나게 유혹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안 걸린다.” 근데 제 속에 있는, 저란 사람을 지지해 주는 힘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지금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나의 풍요로움으로 바꿔가면서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쫓기는 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마음을 갖고 살려면, 성공과 유혹이 필요한가. 아니면 내려놓는 어떤 결단이 필요한가. 그 순간에는 정말 안 걸릴 수 있냐고 물어볼 것 같은데요. 그리고 하루.. 아니 내일이 시합이라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긴 하다. 그렇죠? (멘붕) 근데 결과적으로는 자기와 대화를 시도할 것 같아요. 동생을 설득한다까지는 솔직히 자신은 없고, 동생을 떠나 나 자신의 문제 만을 봤을 때 말이죠.

임승태 ⚙️ 우리 사회가 지금은 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올림픽 응원을 할 때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혹은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우리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그야말로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나의 경기가 되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지는 거죠. 게다가 걸리지도 않고, 건강을 해치지도 않는다면 이걸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만약에 건강을 해친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이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이런 문제.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럴 때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저 자신을 보고 싶습니다.

엥믜 🙊  극 중 레이는 성공, 우승에 집착하는 캐릭터잖아요. 근데 성공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계속 생기고, 그걸 레이 스스로도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캐릭터를 구축하실 때 지금의 시대상이나 사회상도 염두를 해두신 건지, 그리고 관련해 배우들과 어떤 논의를 하셨을지가 궁금했어요.

이영석 💡 드라마터그님이 제안을 해주셨을 때 제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우리도 경쟁 사회잖아’였어요. ‘이 경쟁이 나를 해칠 수 있어’라고 생각해야 건강한 건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야 돼’라고 자기 자신을 내면화시키잖아요. 사실 자기가 아픈 걸 모르면서 병들어가고 있는 게 어쩌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중략) 레이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텍스트고, 그래서 관객들이 정말 여러 가지로 공감할 내용이 정말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 작품이 은유적으로 우리 사회를 비추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현실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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