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엔 팍팍한 현실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참 많습니다. ‘청춘’ 드라마라고 일컬어질 만큼 한국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죠. KBS <학교> 시리즈에서 시작해, <드림하이>, <청춘시대>가 그 계보를 잇습니다. 이 외에 당장 떠오르는 작품만 해도 <이태원 클라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경우의 수>, … 청춘 드라마는 매해 무수히 쏟아져 나옵니다. 🎞

흥미로운 건, 나라마다 묘사하는 청춘의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에요. 이를테면 중국의 청춘 드라마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좋아하지만 고백은 하지 않은 두 남녀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성인이 되어 역경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이 외에도 영국은 마약과 같은 금기에 손을 댄다든지, 미국은 추리를 한다든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이제는 전개를 대충 예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왜 이렇게 젊은 세대의 방황을 많이 다루는 걸까요? 🤔 청춘의 방황은 보편적으로 공감하기 쉽습니다. 그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대부분 꿈, 사랑, 우정 등 때문이며, 살면서 우리 누구나 한 번쯤은 이것들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하곤 해요.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지금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낭만과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죠. 때문에 방황은 콘텐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클리셰입니다.

전형적인 서사를 만들어 냈을 만큼, 방황은 잘 팔립니다. 💸 하지만.. 그 방황은 정말 ‘방황’일까요? 한국 사회는 유독 특정 나이에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듯합니다. 대입,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 과업을 ‘도장 깨기’하도록 강요받는 세상이죠. ‘평균’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철부지로 취급받고, 쓸데없이 시간 허비 말고 정신 차리란 말을 듣습니다. 이런 세태는 한국 드라마에 잘 반영되어 있어요. 예술은 사회의 거울이니까요. 🪞 우리가 방황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이따금 한 발자국 물러나서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생각할수록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 같아요. 설거지를 할 필요 없이 매번 깨끗한 일회용 접시를 쓰다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뿐인가요? 내구성 약한 천연 소재의 생활용품보다는 튼튼하고 색도 예쁜 플라스틱 용품을 쓰는 것만큼 편리하고 효율적인 일이 어딨겠어요. 쓰임을 다해, 혹은 싫증나 쓰던 물건을 버리고 싶어지면 쓰레기통에 넣기만 하면 되고요. 🙄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순간, 플라스틱의 방황은 시작됩니다.

산으로 바다로 퍼지는 플라스틱들은 바람과 비를 맞으며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어요. 날카로운 부분은 마모되고 약한 부분은 부패되기도 하면서요. 🌊 점차 숨을 쉬고 매끄러워진 플라스틱들은 자연스레 해변가로 떠내려오게 됩니다. 이때, 마치 자연물같이 생긴 이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한 예술가의 눈에 띄게 되어요. 그렇게 장한나 작가는 풍화작용을 겪은 플라스틱을 모아 기록하는 <뉴락 프로젝트>를 시작해요.

뉴락(new rock)은 ‘새로운 돌’이라는 뜻으로 암석화된 플라스틱을 의미해요. 🐚 제주도 해변을 걷던 중 바위에 돌처럼 들러붙은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작가는 6년간 전국의 해안과 한강 유역을 돌며 2,000여 점 이상의 뉴락을 수집했어요. 오랜 세월 햇빛과 바람에 의해 풍화작용을 받은 뉴락은 겉보기에 자연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세제 통엔 물풀이 자라고, 스티로폼 속엔 개미들이 집을 짓고, 버려진 부표 위엔 홍합과 따개비가 붙어있을 정도니까요. 🧽

작가는 바다 생물들이 뉴락을 돌멩이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포착할 때마다 섬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플라스틱까지 품기로 한 자연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요. ♻ 어쩌면 <뉴락 프로젝트>는 쓰임을 잃고 방황하던 플라스틱이 인간에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요. 자연은 플라스틱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모양인데 인간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고, 새로운 생태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냐고요. 😶

누구나 한번쯤은 방황하기 마련입니다. 🛣 방황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외려 더 큰 문제가 있겠죠. 살다보면 길은 쉽게 잃어버리고, 때로는 일부러 정해진 것과 다른 길을 가고 싶기도 해요. 방황을 겪으며, 우리는 삶의 방향을 비로소 다시 생각하게 되고, 결국 본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나갑니다. 그래서, 가수 ‘선우정아’는 사랑하는 이에게 오히려 방황을 위해 떠나자며 손을 내밉니다.

아끼는 이가 울고 있다면, 우리는 달래려고 애를 씁니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길 붙들려고도 하겠죠. 하지만 선우정아는 그에게 “도망가자.”고 산뜻하게 제안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떠나 서로를 끌어안자고요. 어쩌면 그가 가장 말하고 싶지만, 너무나 겁났을 그 이야기를 선뜻 해줘요. 이것이 아마도 사랑이겠지요? ❤

선우정아는 발매일로부터 5~6년 전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처음 쓰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 한창 싸우던 신혼 시절,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잠옷을 입은 상태 그대로 통기타 하나만 들고 집을 나와버렸대요. 정처없이 떠나 강원도에 도착했지만, 그를 데리러 온 남편이 결국 그가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이었을 거예요. 이러한 마음을 안고 있었던 선우정아는, 반대로 남편이 힘들어할 때를 떠올리며 이 곡을 마침내 써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망가자’라는 노래는 도망간 적 있기에, 그 견디지 못함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위로예요.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인, 선우정아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방황은 ‘끝’이 있기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방황이 일생 내내 이어지는 이는 ‘방랑자’가 될 것이고, 방황이 곧 그의 고향이 될 거예요. 🥲 그래서 내내 ‘도망가자’라는 말이 채우던 후렴은, 곡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라서는 ‘돌아오자’라는 말로 끝납니다.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어디든 함께 떠나고, 도망가고, 돌아오리라. 이보다 더 달콤한 약속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