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을 전승하는 일이었습니다. 🕊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글을 모르는 이들도 볼 그림이니 고려할 것도 많았습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답게 그려 신의 위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만 했고, 표현에 너무 심취해 들어가야 할 요소가 누락되지도 않아야 했죠. 이때, 이들이 가장 집중한 것은 작품에 메시지를 담는 것이었어요. 바로, “3”말이에요. 👌

기독교 교리에서 “3”은 완벽한 숫자라 일컬어집니다. ‘성부+성자+성령’. 즉, 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에요. 또,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기에 ‘새 생명’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3”이 가지는 상징성이 워낙 중요하니 당시 화가들은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보다도 “3”의 의미를 온전히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 예수의 탄생, 예수와 마리아, 신의 말씀을 듣는 성인 등 “신”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에 등장인물을 “3”의 배수로 배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요. 그래서일까요? 당시 이들의 그림은 아름답기보단 꼭 일타 강사의 족집게 요약본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

그리고 시간은 흘러 르네상스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인본주의 물결 속에도 종교 미술은 존재했어요. 다만, 화가들 사이에 새 기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자 화가들 사이에서 ‘누가누가 더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가’ 대결이 벌어졌거든요. 🤓 이들은 너도나도 해부학과 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배운 이론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스리슬쩍 표현하려 했죠.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나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고 싶어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3”이었어요. 👌

완벽하게 계산하여 공간에 입체감을 부여할 것. 이 미션을 해결할 수 있는 키는 완벽한 비율의 삼각형이었어요. 🗝️ 물체의 모양과 배치를 투시적으로 표현해 가운데 소실점을 기준으로 공간감을 만드는 것이죠. 완벽한 비율로 설정된 삼각형만 있으면 2차원의 캔버스도 3차원의 공간으로 변했어요. 🖼 세기를 거듭하며 변한 화가들, 어쩌면 그 사이에서 자리를 지킨 것은 “3”이었으려나요? 👌

세 자매가 있습니다. 한집에 살던 이들은 집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어요. 🏘 첫째 희숙은 꽃집을 운영하며 방황하는 사춘기의 딸과 함께 살고, 둘째 미연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완벽한 가정을 꾸렸고, 그리고 극작가인 셋째 미옥은 아들이 있는 이혼남과 결혼하여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 오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승원 감독의 3번째 장편 연출작, 영화 <세자매>는 둘째 미연과 막내 미옥이 어린 시절 손을 붙잡고 집 밖으로 도망치는 씬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손을 붙잡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홀로 병원을 향해 가는 중년이 된 첫째 희숙의 뒷모습으로 연결되며 차례로 세 인물의 삶을 보여줘요. 정신없이 살아낸 시간만큼 세 자매는 멀어져 버렸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매일을 술로 보내는 동생의 전화를 외면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할 용기마저도 잃은 채 말이에요.

이들이 서로가 힘든 이유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있었습니다. 희숙, 미연, 미옥이 그린 삼각형의 무게중심에는 이들의 양육자였던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방관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교점은 언제고 현재의 삶에 침투해 과거의 불행을 상기시켰습니다. 🔺 어린 두 동생에게 ‘나는 괜찮다’며 달래던 희숙은 여전히 자신의 불행을 타인에게 나누지 못하고, 미연은 종교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켰고, 미옥은 술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현재를 외면할, 과거로부터 도피할 각자의 해결책을 찾은 걸 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희숙은 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남편을 만났고, 미연은 ’가족의 안녕을 간절히 빌었던’ 어린 시절의 기도를 끝내지 못했고, 미옥은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며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거든요. 이들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지난날의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발견하며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이래, 아버지 나만 닮았어? 우리 다 닮았지.”

마지막 씬에서 이들은 바다 앞에 나란히 앉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아버지와 닮은 자신을 소환합니다. 그러곤 나란히 서서 웃으며 사진을 찍으며 영화는 끝이 나요. 📸 영화가 끝난 이후 세 자매의 삼각형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조금씩 가까워진 꼭짓점들이 그 중심에 놓인 상처를 덮어버리는 그런 날이 그들에게 왔을까요? 🩹

아이돌이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은 칼을 갈았다는 뜻입니다. 🔪 소속사나 자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돌은 미니 앨범이나 싱글 발매를 통해 반복적인 노출로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하고자 노력합니다. 반면 정규 앨범은 그보다 더 많은 노래가 수록되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음반 구성은 물론, 필요하다면 더욱 공들여 수록곡 뮤직비디오나 아트워크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 레드 오션이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레드 오션 같은 이 혼란의 아이돌 시장에서, '정규 앨범'은 아이돌의 성숙도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죠. 💪

그래서 SM 엔터테인먼트에는 속설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정규 3집은 흥하는 것을 넘어 명반이다.’ 2003년 발매된 보아의 《Atlantic Princess》부터, 2014년 발매된 샤이니의 《The Misconcetptions of You/Me/Us》, 2022년 발매된 태연의 《INVU》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아이돌 명가로 자리잡은 SM 엔터테인먼트라 그럴 수 있었던 걸까요? 아니요, 이건 과학입니다. 🧑‍🔬

언급된 세 앨범은 공통적으로 가수가 대중의 눈에 띈 이후 3~5년 이내에 발매되었습니다. ¹⁾ 또, 가요계 정상에 어느 정도 오른 뒤이기도 하고, 소속사와의 재계약 전이기도 합니다. 즉, 회사도, 본인도, 대중도 정규 3집을 위해 힘을 쓸 준비가 된 때인 거죠. 가수는 여러 앨범을 발매하 재능을 갈고 닦았고, 회사는 그러한 가수의 성장을 지켜보며 투자를 결하게 됩니다. 마침내, 대중은 오랫동안 봐온 가수에게 긴 정규 앨범을 듣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러한 삼박자가 갖춰졌을 때, 정규 3집의 마법이 일어나는 거예요! 🧙

올해 2023년, SM 엔터테인먼트의 레드벨벳과 NCT DREAM이 정규 3집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레드벨벳은 무려 데뷔 9년 만에, NCT DREAM은 8년 만에 발매하게 될 '3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조건들과 조금 다르죠? 또, 두 그룹 모두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에, 두 3집은 전설의 레전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성지순례 오셔도 됩니다. 😉

오늘 다다레터 세 줄 요약

1. [미술] 중세 미술도 르세상스 미술도 핵심 포인트는 3
2. [영화] 영화 <세 자매> 인물 분석 - 삼각형 구도를 중심으로
3. [음악] SMP는 정규3집이 진짜다

요즘 웬만한 뉴스레터의 도입부에는 위와 같이 세 줄 요약이 자리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스크롤을 내리지 않고도 읽으려던 글의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요. 이때 더 궁금한 내용이 없다면, 쉽게 페이지를 이탈할 수 있습니다. 새로 접속한 페이지에서도 다시 요약된 내용을 후루룩 읽고, 또 그다음 글로 휘리릭 이동하고, … 📑 세 줄 요약은 방대한 인터넷 세상에서 정보를 재빠르게 습득하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왜 두 줄도, 네 줄도 아닌 세 줄로 요약해 주는 걸까요? 세 줄 요약이 ‘국룰’이 된 것에는 어쩌면 ‘서론-본론-결론’이라는 구성이 글쓰기의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기술한 것도 ‘삼단’ 논법, 시학에서 논한 것도 ‘3막’ 구조라는 점! 3️⃣ 삼단계 구성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건 이제 자명한 사실입니다.

단 세 줄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이미 각종 요약 콘텐츠가 즐비합니다. 특히 영상 매체에서 두드러지는 모양새죠.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 한 편만 봐도 책 속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을 얻을 수 있고, 유튜브에서는 ‘[핵심요약] <부부의 세계> 전편 정주행’과 같은 제목의 영상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꺼운 책을 붙잡고 있을 필요도,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 볼 필요도 없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AI 리터러시 ¹⁾’로 나아가는 시점인 마당에 시간을 들여 전문을 읽자는 제안은 그다지 유의미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이렇게 짧은 글만 읽다가는 ‘심심한 사과’나 ‘사흘’은 물론이고 더 많은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될지 몰라요. 가만 생각해 보면, 읽기의 재미는 핵심에 도달하기까지의 ‘빌드업’ 과정에 있지 않나요?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은 결코 단 세 줄로는 요약될 수 없으니까요. 모두가 요약을 너무나도 즐기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읽을거리가 단 세 줄로만 되어 버린다면.. 그건 제법 허전할 것 같습니다. 😕

• 다다단 👤 ) 먼 훗날 고전으로 남을 '지금' 영화, 음악, 공연, 책 등을 골라보는/내다보는 작업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ㅎㅎ
• 다다팀 💌 ) 헉! 안 그래도 저희 기획 회의 당시 말씀 주신 작품들도 후보에 올랐었습니다. 논의 끝에 발송한 컨셉으로 정해졌는데,, 피드백을 보니 너무 아쉽네요ㅠㅠ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고전으로 남을 작품들도 꼬옥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