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피드백 답장 준비했어요! (쩌렁쩌렁) 2021/06/03 당신에게 다다른 #4번째 레터 👥 가족 "가족은 멀리 살 수록 화목해져." 제가 독립을 한 뒤 친구에게 들은 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니 가족 간의 적당한 거리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제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가족'만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과 제 거리는 또 어떻게 되는 거죠? 이번 호에서 에디터들은 가족의 형태와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어요. 함께 들여다볼까요? - 엘리 ☂️ [ 트렌드 ・ 대중문화 ] 그 많던 뉴 노멀 패밀리는... 👀 [ 영화 ] 영화인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 🎞 [ 책 ] '남'과 가족이 되는 것 🕳 [ 음악 ] 당신의 피가 흐르는 저주받은 삶 🩸 트렌드 ・ 대중문화 그 많던 뉴 노멀 패밀리는... 👀 (이미지 출처 : 사유리 인스타그램 @sayurikon13) 얼마 전 사유리가 아들 '젠'과 함께 KBS 주말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습니다. 👩👦 젠이 엄마와 함께 첫 외출을 하고, 첫 친구를 만나는 경험을 보여줬는데요. 사유리는 지난 11월 일본의 정자은행을 통해 젠을 출산했고,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사유리의 용감한 선택을 응원했고, 누군가는 그의 선택이 올바른 가족관 형성을 해친다고 주장했죠. 그런데 정말 비혼 출산은 큰 용기가 필요하고, 올바른 가족관에 어긋나는 행동인 걸까요? 그저 가족을 이루는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가족에 대한 생각도 예외는 아니에요. 우리가 봐온 스크린 속 가족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이 낳은 딸과 아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연스레 그런 구성만이 '정상'이자 '표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가족이 그런 형태를 이루진 않아요. 자녀가 없을 수도, 양육자가 한명일 수도, 동성 부부일 수도, 입양을 했을 수도, 동거를 함께할 수도 있죠. 이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뉴 노멀 패밀리라고 불러요. '뉴 노멀'은 본래 경제 용어지만, 사회적으로 새로운 기준이 보편화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언택트가 일반화된 것을 뉴 노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앞에서 말한 정상 가족 형태는 그 바깥의 가족들을 배제하고, 비정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뉴 노멀 패밀리라는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켰고, 사유리에 앞서 장신영, 이태성⁽¹⁾ 등 많은 연예인이 소중한 식구들과 함께 가족 예능에 출연했어요. 영화 「윤희에게」, 드라마 「청춘시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²⁾ 역시 큰 화제를 끌었고요. 하지만 그들이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여전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콘텐츠로 소비되고, 논쟁거리로 취급됩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강봉규 CP는 사유리의 출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 어떤 분들은 기획의도를 벗어났다고 하지만 기획의도도, 시대도 영원불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변화 역시 프로그램에 담아보고자 한다."
그의 말처럼, 대중문화들에 더 많은 뉴 노멀 패밀리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그저 일상이 되면 좋겠어요. (1) 장신영은 SBS 동상이몽에서 이혼과 재혼을 통해 얻은 아들 정인이와 정우와 함께 출연했어요. 이태성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서 싱글대디의 모습을 보여줬죠. (2) 영화 「윤희에게」에는 양육자가 한명인 가정과 가족으로 살아가는 고모와 조카가, 드라마 「청춘시대」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는 생활 공동체를 이룬 또래 여성들이 등장해요. 영화 영화인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 🎞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가족이 된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들 다르겠지만 서로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까지도 사랑하며 각자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는 게 가족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랑을 표현하는 어떤 부부의 특별한 방식을 오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누벨바그¹⁾를 이끈 영화인 부부 아녜스 바르다와 와 자크 드미! 🎬 아녜스 바르다와 자크 드미는 모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엄청난 영화인 가족이에요. 영화인으로서, 그리고 부부로서 함께했던 그들의 관계는 자크 드미가 뒤늦게 본인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역할이 아닌 자크 드미 자체를 바르다는 사랑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별거 이후에도 바르다와 자크 드미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가족으로 남아주기로했어요. 👨👩👧👦 그리고 점점 병세가 깊어지는 자크 드미를 간호하며 바르다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둘이 함께했던 시절이 아닌, 그녀가 부재했던 때의 자크 드미의 삶에 대해서요. (이미지 출처 : Jacques Demy et Agnès Varda ici en 1990 à Nantes© Photo Ciné Tamaris) 그의 어린 시절을 담은 실제 영상과 아녜스 바르다가 재현한 장면, 그리고 자크 드미가 연출했던 영화 씬들을 모아서 픽션도 다큐도 아닌 혼합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 작품이 「낭트의 자코」 에요. 자코는 자크 드미의 애칭으로,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자크 드미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영화감독이 된 계기들을 마치 전기처럼 다루기 때문에 장르는 아무래도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어요. "「낭트의 자코」는 저만이 할 수 있는,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자크 드미에게 바치는 오마주였어요." 바르다는 자크라는 사람,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자크의 세계를 모두 포용했던 삶의 동반자였기 때문에 가족이 되기 이전의 시간속에서도 영화인 드미의 정체성을 수집할 수 있었어요. 수집된 자크의 삶의 조각들과 함께 바르다의 영화적 상상력은 곧 자크의 영화보다도 더 자크를 잘 그려내는 「낭트의 자코」를 완성시킵니다. 이렇듯 영화가 아내가 바라본 남편의 삶과 세계를 그린다는 걸 아는 순간, 장르는 곧 로맨스가 되어버리죠. 사랑한다는 말을 구구절절 풀어내지 않고 영화라는 언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삶과 세상을 표현하는 것. 그게 바로 이 아름다운 부부가 서로의 세계에 서로를 끌어들이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 덧) 「낭트의 자코」를 제작하던 도중 세상을 떠난 자크 드미, 그리고 재작년 세상을 떠난 아녜스 바르다는 가족묘지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wikimedia) 책 '남'과 가족이 되는 것 🕳 (이미지 출처 : 문학과 지성사) 이동하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난 오기(주인공)와 아내. 아내는 목숨을 잃고 오기는 전신이 마비됩니다. 오기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며 의사표현을 하는 것뿐이죠. 그런 오기를 위해 장모가 수발을 드는데요, 처음엔 오기의 병간호를 정성스레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점차 사람들 앞에서 오기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은근슬쩍 멸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정신적 폭력이 오기를 은근슬쩍 때린다거나 오기의 의사와 상관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의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지죠. 그러던 어느 날, 장모는 집 앞마당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는데.. ⁽¹⁾ 👀🕳 혈연이 아닌 법으로 묶인 가족이 있습니다. 오기와 장모처럼 말이죠. 이런 가족은 다리가 되는 사람이 존재할 때 그 관계가 유지돼요. 편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홀』은 철저한 타인들의 서사가 다리 없이 부딪힐 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완벽하지 않던 장모와 사위 사이. 이 사이를 메꾸고 있었던 아내의 부재로 이야기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호러가 됩니다. 🤦 하지만 이 관계가 끔찍해지는 계기란 단순 다리의 부재 뿐만이 아닙니다. 장모와 아내의 관계, 아내와 오기의 관계, 장모와 장인의 관계, 심지어 오기와 장모의 어린 시절과 가치관까지 온갖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 두 사람을 철저한 ‘남’으로 만들어요. 🔍 상식이 다른 사람과 사람. 이 둘을 묶기에 법은 생각보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너무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 개인에게 다 맡기는 것 또한 가혹한 일이죠. 만약 당신이 전혀 다른 세계와의 접촉을 고려하고 있다면, 찬찬히 생각해봅시다. 과연 나는 다른 세계와 가족으로 섞일 수 있는 사람인가요? 나와 상식이 다른 사람과 같은 세계를 살아야 한다면 난 얼마나 유연하고 깨끗해야 할까요? 내가 준비되었다 한들 상대가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난 그 세계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이런 장모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나 뭐라나...🙄 음악 당신의 피가 흐르는 저주받은 삶 🩸 자신의 유약함을 세상에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얼룩진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에 주춤하곤 하죠. 🤫 특히나 ‘화목한 가정이 정상적’이라고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가족과 관련되어 생겨난 얼룩이라면 더더욱이요. 하지만 혈연으로 이어진 이에게서 받은 상처를 여지없이 드러낸 노래가 있습니다. 핫펠트(예은)의 「Life Sucks」는 그의 첫 정규앨범 「1719」의 첫 번째 트랙입니다. 마치 17세~19세 무렵처럼, 감정이 들쭉날쭉한 상태에 놓여있던 그의 지난 3년(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죠. 「Life Sucks」에서 핫펠트는, 아버지로 인해 괴로워하는 딸의 심정을 그려냈습니다. 동일 앨범 5번 트랙의 「나란 책」에서 비슷한 상황이 묘사되기도 하고요. 잠깐 ‼️ M/V에 다량의 혈액🩸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심약하신 분은 음원으로 즐겨주세요 :) “If only I could go back and tell myself
Don't you trust him, he already hurt you.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 자신에게 말해줄거야
아빠를 믿지 말라고. 그는 이미 너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_ 「Life Sucks」 中에서 “여섯 살 동생이 태어나던 때와
열두 살 분노를 처음 배운 때와
열다섯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_「나란 책」 中에서 사실 아직 대중들에게 핫펠트보다는 원더걸스 예은이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할 것 같아요. 핫펠트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며 '대중들이 제게 원하는 색에서 벗어나 제가 보여주고 싶은 저만의 색을 자주 보여주고 싶다'⁽¹⁾고 이야기했어요. 누군가는 원더걸스 예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 그리고 핫펠트로서 자신의 어두운 한 때를 이야기하는 것의 필요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요. 🤔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핫펠트 개인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이 앨범의 의의는 핫펠트 개인이 행복의 순간뿐 아닌 아픔과 상처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음을 세상에 보여준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있어 가족이란 존재가 정녕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기도 하고요. 혈연으로 묶인 관계, 세상 끝에서까지 내 편인 존재, 그것이 과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족의 의미일까요? 모든 가족이 평온할 수 없음을 핫펠트는 자신의 삶을 예시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1) "대중들이 제게 원하는 색이 있고, 저에겐 제가 보여주고 싶은 색이 있는데 그게 일치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가 좋은 걸 했어요. 제 경험을 노래에 담고 싶었죠. (...) 저만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싶어요." (인터뷰 출처: 셀레브, https://bit.ly/3uOyqIF) ![]() 오늘 당신께 다다른 DADA letter, 어땠나요? 🕊 여러분이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을 모아 ~ 모아 ~ 다다에서도 피드백에 대한 피드백을 준비했어요. 궁금하시다면 다다레터 노션으로 놀러오세요 ! 오늘의 다다레터에 대한 피드백도 잊지 마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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