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받았던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가 있습니다. 왜인지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날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처음 편지를 받았던 날, 그리고 그때 주고받은 마음이 생각납니다. 때문에 저는 편지를 씁니다.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은 문장들, 그리고 그때 제 마음을 누군가도 다시 꺼내볼 테니까요.

슈만은 악보 속에 프리켄이 살던 도시 이름을 숨겨뒀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어요. 《사육제》는 흔히 '4개의 음표'라는 부제와 함께 불리는데, 이때 그 음표가 바로, A/S/C/H예요. 'ASCH'는 음악적으로는 라-내림 미- 도-시의 연속으로 읽히지만, 지리적으로는 프리켄이 살던 보헤미아의 소도시 '아슈'로 읽혀요. 심지어 곡 진행도 이 네 음을 중심으로 흘러간답니다. 또, 끝의 세 글자 'SCH'는 슈만의 이름 첫 글자들이기도 해요. 슈만이 이 곡을 쓴 후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곳의 지명에서 영감을 받고, 그 안에 내 이름까지 쏙 숨겨놓은 거잖아요. 작곡가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러브레터인 셈이네요. 곡 소개도 짧게 하자면, '사육제'는 사육제 풍경을 묘사하는 힘차고도 아름다운 곡입니다. 앞서 소개한 '어린이의 정경'과 함께, 슈만의 대표곡으로 꼽히기도 해요.

하지만 슈만과 프리켄의 사랑은 큰 결실을 맺지 못해요. 현실적인 이유로 이별을 맞게 되거든요.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어요. 음악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프리켄은 슈만이 '클라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법정까지 갔을 때, 자신은 슈만과 약혼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어요. 그의 여성 편력을 변호해준 거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슈만은 클라라와 무사히 결혼하게 됩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래요,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도록! 하지만 연필도 자국이 남고, 대부분의 우리는 만년필로 사랑을 꾹꾹 눌러쓰곤 하죠. 그런데 슈만은 그것도 모자라, 영영 지울 수 없는 음표와 악곡으로 프리켄에게 편지를 써버렸네요. 🎵 아휴, 사랑에 빠진 청춘은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요!

어쩌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가족 간의 헤어짐이 덜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할 수 있고, 또 보고 싶다고 메시지를 남겨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 하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와 떨어지게 된 이중섭 화가와 그의 아내 마사코 씨가 겪은 이별은 너무나도 답답한 이별이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중섭 씨가 할 수 있는 건, 가족을 작품에 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거든요. 📮 그는 막막한 그리움에 무려 1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