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관악산 호랑이 연구소는 관악산 호랑이들의 생태 환경을 연구, 보존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학술제는 물론, 관련 시위에도 참가하며 활동에 힘쓰고 있어요. 서울에 위치한 관악산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게 조금 의문이실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에.. 호랑이가 있어요?” 사실인지는 소장님도 잘 모르실 듯 합니다. 😅 왜냐하면 ‘관악산 호랑이 연구소’는 이병수 작가의 작품, 즉 거짓말이거든요.

왜 하필 관악산이어야 했고, 호랑이어야 했을까요? 작가는 산뜻하게 되묻습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은 사람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루었지만, 과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요. 이 무슨 사실탈트 붕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호랑이가 없다고 확신하고, 적어도 관악산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호랑이가 시베리아에서 산맥을 타고 내려오다 보니 관악산에 터를 잡았을 수도 있잖아요. 이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또, 그럴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해도 되나요?

명백한 사실이나 진실은 호랑이처럼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거짓말마저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란 정말 어려워요. 또, 이게 '사실'이라고 간절하게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우릴 더 혼란스럽게 하고요. 사실조차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고, 거짓말조차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사이, '관악산 호랑이 연구소'는 거짓말의 경계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님은 그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이것도 거짓말일 수도 있어요. 😉

¹⁾ 다큐멘터리와 일일 연속극을 뜻하는 솝 오페라(soap opera)의 합성어에요. 평범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시리즈로 만든 것으로, 출연자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지만 감독의 시선으로 재구성되어 극적인(dramatic)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²⁾ 극장에서 개봉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는 여러모로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아요. 감독은 이누이트족의 일상을 담으며 실제임을 강조하는 자막을 달았는데요, 이후 감독의 인위적인 연출적 개입이 드러나자 큰 논란에 휩싸였어요.

독립영화 배우 기환은 그동안 출연한 영화의 DVD를 받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과정이 영 순탄치 않아요. 기껏 준호 형의 사무실에 찾아가니 부재중이고, 사교왕이었던 오대교는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얼굴을 보여주지 않네요. 팀으로 작업하던 ‘김가의 세쌍둥이 필름’도 사이가 틀어져 다른 연출에게 직접 연락해야 해요. 기환은 과연 DVD를 모두 받을 수나 있는 걸까요? 🙄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 기환은 순지를 만나러 갑니다. 카리스마 있었던 순지는 독특한 말투를 구사하는 ‘카와이’ 순지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순지는 기환과 함께 촬영했던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고, DVD를 건네줘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기환과 실랑이하며 넘겨주지 않으려 합니다. DVD를 기환에게 빼앗긴(!) 순지는 말해요. “그 영화 하나로 나 판단하지 마.” 이때쯤이면 우리는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감독들은 학생 때 만든 작품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요. 순지는 함께 만든 작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 거짓말한 거였습니다.

감독들은 불쑥 찾아온 기환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변해버린 모습을 숨기려 해요. 이때 영화는 기환이 만나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학생 시절의 그들은 투박하고 유치한 작품을 만들긴 했어도,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가득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제법 낡고 지친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세우는 거짓말은 창피함에 내세우는 마지막 자존심인 것처럼 보여요.

시간이 흐르며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합니다. 당장 배가 고픈데 돈이 안 되는 독립영화를 영영 할 수는 없으니까요. 기환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는지 양파를 까며 엉엉 울면서도, DVD가 담긴 가방에 쓰레기가 가득한 것을 보며 진한 ‘현타’가 온 표정을 짓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맞다. 밀어붙여라.”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어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는 거짓말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기환에게도, 거짓말로 애써 지독한 현실을 견디는 감독들에게도 묵직한 위로를 건넵니다. 📀

오늘 소개해 드릴 불안한 yee도 상냥함을 연기했던 적이 많은가 봐요. 그는 자신의 상냥함이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죠. 처음엔 상냥함을 연기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타적인 마음에 사마귀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고 말이에요. 😔 이를 가사로 쓴다는 것 자체가 용감한 일인데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들을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런 내 모습이 이기적인가요? 하고요.

상냥함을 처음으로 연기했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친한 친구들에게서 묘한 실망감을 읽었을 때,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의 마음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마귀는 아마 이때쯤 생겼을지도 모르겠네요. 🩹 이타적인 우리의 마음에 상대가 맘처럼 반응해 주지 않을 때 우린 화들짝 놀라 애써 웃는 얼굴을 했던 것 같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들이 지속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바로 상대의 상냥함까지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

내 상냥함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해

사랑하기 위한 상냥함은 어디에

_ ‘내 상냥함은’ 가사 중

우리는 모두 상냥함을 연기하며 살아요. ‘이 세상에 진짜 상냥함이 존재할까’라는 물음에 누구도 쉬이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자주요.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 기억해 봐요. 연기로 꾸며낸 상냥함이 진짜 이타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던 순간을요. 언젠가 사업가 백종원 씨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선행이 처음엔 ‘척’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칭찬을 받다 보니 착한 척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차피 거짓말을 할 거면 우리 이젠 상냥함을 연기하는 것에 망설이지 말아 볼까요? 누가 압니까! 이런 마음들이 모여 이타적인 세상을 만들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