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2 당신에게 다다른 #1번째 레터 🤲 쪼물딱 쪼물딱 '쪼물딱 쪼물딱'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뭔가 귀엽고 아기자기한 움직임이 떠오르는데요, 사전적 의미로 다시 살펴보자면 작은 동작으로 물건 따위를 자꾸 주무르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작다고 느껴져도 자꾸 해내는 것들 - 계속 매만질 수 있는 것들 - 이야말로 우리를 지탱시키는 무언가가 아닐까요? 쪼물딱에 내재된 힘을 우리 생각해보면서, 에디터들이 찾은 쪼물딱의 여지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 음악 시간을 멈추고픈 사람들 ⏱ 21년.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정말 놀라워요. 아마 당장 내일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금일 겁니다. 🤔 그러나 여기, 범람하는 신기술을 제쳐두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뮤비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 새소년의 예사롭지 않던 첫 등장엔 애니메이터 츠치야 호지가 제작한 뮤직비디오의 역할이 컸어요. 일면식도 없으나 뭐 잃을 것 있겠냐는 신인의 패기로 무작정 보낸 새소년의 메일에 츠치야는 선뜻 오케이를 합니다. 😳 (띠용) 장장 4개월에 걸쳐 완성된 뮤직 비디오. 오랜 시간을 다듬어낸 작은 나무조각 같은 곡이라 말하던 「긴 꿈」은 황소윤의 작은 방에서 시작되어 애니메이터의 쪼물딱거림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뮤직) ![]() 기존의 화음 체계를 부숴버리는 대담하고 자유로운 전개로 스스로를 재즈 아티스트가 아닌 화음가(Harmonizer)라고 정의하는 만큼 제이콥은 어떠한 틀로도 규정할 수 없어요. 이번 곡 또한 그가 평소 사용하던 오케스트라적 사운드 대신 펑키한 사운드가 사용됐는데, 그래서인지 뮤직비디오에도 8-90년대 b급 공포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스톱모션 효과를 사용해 펑키함을 더욱 강조했어요. 🎸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raulgonzo) “참 이상해 난 조금 더 시간을 잡아 두고 싶어” “I been obsessin’ bout the present” 세상으로부터 부정당하는 이들에게 훌훌 시간을 멈추고 날아가버리자 말하는 누군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는 사랑에 빠진 누군가. 시간의 흐름 속 행위를 정지시켜 특정 시간을 강조하고 극적인 충격 효과를 주는 스톱 모션 기법은 이들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연출이에요. 쪼물딱 쪼물딱 정성스레 수고해준 두 아티스트 덕에 우린 시간을 멈추고 그들의 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따뜻함과 유쾌함 그 자체였어요. 👀 영화 영상을 자르고 이어서, 영화 "오케이, 컷!" 이 한마디로 영화는 절대 완성되지 않아요. 🎬 카메라가 꺼지고, 감독이 영상들을 '쪼물락'대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영화는 발화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왕가위 감독은 현장에서 즉석으로 줄거리를 정하고 촬영하기 때문에, 편집에 많은 무게를 싣는 편입니다.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jettonefilms) 홍콩의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연인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의 이야기를 찍을 때도 그의 과감한 스타일은 여전했어요. 그때 무려 필름 40만 자가 사용됐습니다. 그중 단 1만 자만이 영화 「춘광사설(해피투게더)」이 되었고, 나머지 39만 자 중 일부는 별개의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가 됐어요.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는 당시 현장뿐만 아니라 본편에는 없는 두 캐릭터와 추가적인 서사도 담겨있어요. 주인공들은 훨씬 복잡하게 얽히고, 도시의 열기는 더욱 생생하게 내려앉죠. 하지만 왕가위 감독이 편집한 「춘광사설」이 먼저 존재했기 때문에, 이 영화도 유의미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쪼물락 대며 빚어놓은 ‘아휘’와 ‘보영’의 세계가 충분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관객은 그 너머를 궁금해했던 거 아닐까요? 🧐 만약 왕가위 감독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저 캐릭터를 넣고 어떤 장면을 빠뜨렸다면, 그 누구도 나머지 필름의 행방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편집의 힘은 강력해요. 백 가지 줄기를 타고 뻗어나갈 수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한 갈래로 정돈하고, 관객이 이입할 수 있는 서사의 창을 열기 때문이죠. 📝 왕가위 감독의 「춘광사설」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는 이러한 편집에 관한 감독의 권한과 자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술 조각은 왜 꼭 딱딱해야 할까? 🤔 손과 도구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조소. 이는 어쩌면 ‘쪼물딱 쪼물딱’과 가장 맞닿아 있는 미술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소재를 다듬어가는 일은 흔히 여리고 섬세한 것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말랑한 소재를 사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완성된 작품은 강하고 단단하다는 점 또한 조소가 가진 매력 중 하나랍니다. 하지만 완성되고 나서도 부드럽고 유동적인 조각이 있다면요? 🙄 1980년대 조소 작가 이불은 이렇듯 딱딱한 조각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석고・나무・찰흙 등 전통적인 조소 재료와 표현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는 천・솜과 같이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로 ‘소프트 조각’이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이 작품들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행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위치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불-시작』展이 진행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는 이불의 소프트 조각, 풍선 모뉴먼트⁽¹⁾ 「히드라」가 자리하고 있어요. 10m 높이의 이 거대한 작품에는 여러 개의 펌프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람객이 펌프를 밟아야 공기가 주입되기 때문에 완전히 부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시마다 유동적일 수밖에 없죠. 바로 이 지점으로 인해서 ‘관람객의 참여’와 같이 추상적인 요소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구조물을 채우는 공기마저도 새로운 재료가 되었고요. (이미지 출처 : 이데일리) 이불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금 불러와 볼까요. ‘조각은 왜 꼭 딱딱해야 할까’. 이불은 조각이라는 장르를 단정 짓지 않기 위해서 낯선 소재를 차용합니다. 그가 쪼물딱 쪼물딱 열심히 빚고 깁고 얽어낸 것들은 눈에 보이는 조각 작품을 넘어 말랑한 시각과 관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 (1) 모뉴먼트(monument):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조물 및 조형물. 기념비, 기념상, 개선문, 기념 건축물 및 조형물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트렌드 ・ 대중문화 이케아와 모리스(a.k.a. 대량생산 헤이터)가 조우할 때 (Feat. Arts and Crafts Movement) 안 해도 되는 수고를 사서 하는 것. 머릿속으론 아니라는걸 알지만 우리는 종종 요상한 선택으로 스스로를 고달프게 합니다. 그래도 매끄럽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 조악한 질척거림이 묻어나는 무언가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매력적인 것들은 돈이 되더라구요. 🤑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더 수고스럽게 해서 소비자가 상품에 더 큰 가치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 바로 이케아 효과(The IKEA effect)인데요, 제작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가치를 부여하는 건 이케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만은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Bureau Borsche 홈페이지) 조금 유난스럽게 펼쳐보자면, 19세기 후반 영국의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까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수공업 사회로부터 벗어날 때이니 아무래도 예술성과 미적요소 보다는 실용성이 먼저였는데요, 예술의 기계화와 질적저하에 반발한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바로 존 러스킨과 그의 제자 윌리엄 모리스! 👨🏫 그들은 손으로 (쪼물딱) 만들어내는 무언가의 힘을 믿었어요. 뿐만아니라 러스킨은 대예술(Greater Arts)과 소예술(Lesser Arts)을 구분하며 소예술의 범주에 실내장식, 가구, 주방용품 등을 포함시켰습니다. 즉, 일상적인 것들도 예술 제작으로 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거죠! ✔️ 그리고 모리스는 미술과 노동이 재결합된 공장을 제안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이 기예를 탐색하고 미술가와 같은 만족감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턱없이 비쌌던 물건값 때문에 그의 야무진 바람은 대중화되기엔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지금의 이케아는 🤟한손에 가성비, 한손에 쪼물딱거림🤟을 쥐고선 돈을 벌고 있습니다(엄청 많이). 대량생산시스템을 비판했던 러스킨과 모리스가 이케아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쪼물딱의 의미를 지켜낸다면 나름대로 Arts and Crafts Movement를 실천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당신께 다다른 DADA letter, 어땠나요? 다다레터는 당신의 피드백으로 더 풍성해집니다🕊 |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음악/영화/대중문화/트렌드 등 문화의 넓은 범주를 다룹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