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Listener이신 것 같아요. 씨는요.. 조금은 민망하네요. 반가운 주제가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라.. (겸손한 웃음) 부디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어요. 전 즐겨 듣는 팀들이거든요. 낯선 언어의 곡을 듣는 것 만으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 같아 여행하는 느낌이랄까? 어, 벌써 일어나시게요?

로제타석(Rosetta Stone). 먼 옛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여러 차례 발표했던 법령을 세 가지의 언어로 새겨놓은 돌이에요. ⚒️ 백남준은 이 오래된 유물을 통해 사람들 사이 가장 오래된 매개체는 바로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떤 외국어를 들이민대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는 또 다른 로제타석을 만들어 외국어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꽁꽁 숨겨두었어요. 가장 최신의 언어로 여겨지는 영상언어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오래된 매개체로서의 언어를 인식하게 된 순간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근사한 발견이죠. 🔐

백남준 작가의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는 로제타석이라는 예스러운 형태를 채택함과 동시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의 언어를 자국어와 같은 가치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세련된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보아도, (혹은 들어도) 무신경하게 지나치기보다는 그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한 번쯤 궁금해할 것 같네요. 😏 님은 어떠신가요?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 수능에서 영어과목이나 제2외국어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이력서에 외국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혹은 여행지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서 말이에요. 💬 한편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많은 외국어를 접합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도 많이 보고요. 때문에 언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어떤 변화들이 생기고 있어요.

영어를 예시로 든다면, 우리나라는 유독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데에 엄격했었어요. 사실 완벽의 기준은 아주 모호합니다. 문법적인 오류가 없는 것? 고급 어휘를 사용하는 것?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지만, 우린 유독 ‘발음’에 집착했습니다. 🗣 어쩌면 발음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쉬웠던 것일지도 모르죠. 문법과 어휘 같은 문장력을 기준으로 삼으면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도 높은 언어적 소양이 필요하니까요. 특히나 영어의 경우에는 ‘정확한’ 발음은 대개 미국의 발음을 기준으로 했는데요, 그래도 요즘은 ‘미국인처럼 영어 하는 것’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집착하는 문법과 발음보단 전달력에 집중하는 태도, 소통하려는 진솔함, 언어는 소통의 도구일 뿐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출처 : “한국인 특유 문법집착 없다” 美흔든 윤여정 영어 비결 (🔗)

그래서인지, 이젠 ‘발음 구리다’라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구린 사람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정말.. 발음으로부터 쿨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 사람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외국어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국적의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통해 언어뿐 아니라 그들의 이미지를 소비해요. 가령... 뉴요커, 런더너, Valley girl, 파리지앵 등의 이미지 말이에요. 잘 가공된 콘텐츠는 부러움의 마음, 그리고 비슷해지고 싶은 심리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특정 집단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며 은연중에 그들의 언어습관을 모방하려고 할지도 모르죠. 그들의 억양, 자주 쓰는 단어, 혹은 제스처까지도요. 그래서 그런지 ‘how to do a 000 accent’와 같은 콘텐츠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

물론 누군가를 모방하려는 심리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 만약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유가 나고 자란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삶, 즉 다른 세계로 확장하는 유연함에 있었다면 말이에요. 그렇다면 크리에이터나 미드 속 어떤 인물의 모습, 즉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려는 심리는 되려 스스로를 위축시킬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들로 예를 들어볼까요. 먼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 영화의 영제목은 <Decision to Leave>인데요. 분명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거예요. Decision 대신 Resoultion이나 Determination을 넣을 수도 있겠고, Leave 대신 Depart나 Go off를 넣을 수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절대 ‘일치'하는 번역이란 존재할 수 없어서, 때로는 직감과 결단이 필요해요. ✏️ 게다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치하는 번역이란 신기루에 불과해요. 우린 서로 다른 문화권과 언어권에 살잖아요. 그리고 앞에서 얘기했듯 영화의 제목은 그 영화를 대표하기 때문에, 때로는 완벽한 번역보다는 확 꽂히는 번역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소리 그대로 옮겨오기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 매기 질렌할 감독의 <로스트 도터>가 좋은 예시가 되겠어요. ‘잃어버린 딸' 혹은 ‘딸을 잃어버리다', ‘딸의 실종' 등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지만, 제작사는 음차를 선택했어요. 다만 이 선택은 우리나라가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친숙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죠. 앞에서 말한 <헤어질 결심>이 영어권 국가에서 ‘Hae-eujil Gyulsim’으로 개봉할 순 없는 걸 생각해보세요. 이 외에도 <미친 능력>은 원제목 <The Unbearable Weight of Massive Talent>(거대한 재능의 견딜 수 없는 무게)를 간략히 축약하되, 어느 정도의 의역을 보탠 제목을 선택하기도 했어요. 💭

언어를 뛰어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제목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언어끼리 일치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번역을 하고, 외국어 사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을 단숨에 흡수시키기 전에 그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걸로 해요. 💝